[대일론조] 조선에 대한 《통감》통치를 실시한 일제의 만고죄악

일제가 우리 나라에 악독한 식민지통치기구인 《통감부》를 설치한 때로부터 111년이 되였다.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 인민은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란폭하게 유린하고 우리 민족에게 전대미문의 불행과 고통을 강요한 일제의 죄악을 잊지 않고있다.
1905년 로일전쟁이후 일제는 인차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지배권확립에 달라붙었다.교활한 일제는 허울좋은 《보호》라는 간판을 내걸고 위협공갈과 강박, 사기협잡의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하였다.이렇게 날조된 《조약》이 국제법상 완전무효임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뒤이어 그것을 턱대고 1905년 12월 《칙령》 제267호로 33개 조항의 《통감부 및 리사청관제》를 공포하였다.그 다음해인 1906년 2월 1일에는 서울에 정식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통감》통치를 실시하였다.
우리 인민은 수십년동안 피눈물나는 노예살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의 《통감부》설치와 《통감》통치는 본질에 있어서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란폭하게 유린말살하고 전지역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기 위한것이였다.《통감》은 우리 나라의 립법, 사법, 행정, 군사통수권 등 모든 권한을 빼앗아가진 최고통치자였다.
일제는 《통감부 및 리사청관제》의 조작을 통하여 《통감》이 총독과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할수 있게 하여놓았다.이에 따라 《통감》은 일본왕의 직속으로 되였으며 우리 나라에서 일본정부를 대표하여 외교관계문제와 관련한 법령이나 조약들을 정지, 취소시킬수 있는 권한, 《통감부령》을 발포하여 우리 인민들을 구류할수 있는 권한, 무력사용을 명령할 권한 등을 가지게 되였다.《통감부》에 꾸린 방대한 식민지통치기구를 통하여 《통감》은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를 통해 알수 있는바와 같이 당시 우리 나라의 최고통치자는 조선봉건정부의 황제가 아니라 일본의 《통감》이였으며 통치기구는 조선봉건정부가 아니라 일본의 《통감부》였다.일제가 일본거류민통솔의 명목하에 조작한 《리사청》 역시 《통감》통치실현의 도구였다.
일제가 《리사청》을 내온 목적은 《통감부》가 직접 관할하는 식민지통치기구를 확립하려는데 있었다.《리사청》의 우두머리인 《리사관》은 《통감》의 지령을 받으면서 자기가 맡은 지역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다.일제는 이러한 통치기구도 부족하여 1906년 9월에는 여러 지방들에 《리사청지청》까지 설치하였다.
일제는 《통감》통치강화를 위해 수많은 무력을 끌어들여 우리 나라를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전변시켰으며 조선봉건정부에서 황제의 권한을 체계적으로 약화시켰다.그들은 황궁에 대한 《자유출입》을 중지시킨다는 《궁금령》을 《칙령》으로 발포하도록 강요하고 일본경찰들이 황궁과 황제에 대한 《호위》를 맡도록 하였다.그리고는 저들의 승인없이 조선사람들은 황제를 만날수 없게 하였다.이렇게 함으로써 황제의 손발을 얽어매고 저들의 통제권안에 넣었다.이와 함께 일제는 우리 나라의 립법, 사법, 행정 등 모든 부문들에 《통감부》가 파견한 일본인들을 배치하고 그들이 직접 통치하게 하였다.
일제에 의한 《통감》통치시기에 우리 인민은 이루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하였다.
이 시기 일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방해로 되는 우리 나라의 반일애국자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학살하였다.일제는 《폭도토벌》(의병토벌)의 구실밑에 우리 나라의 주요도시들은 물론 산간벽지에까지 기여들어 의병부대들에 대한 야수적인 《토벌》을 감행하였으며 의병들이 지나간 마을을 모조리 불사르고 의병들과 련계를 가진 사람들은 무조건 총살하였다.
이러한 살륙만행의 지휘자는 《통감》이였다.당시 첫 《통감》이였던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는 《폭도토벌》에 동원된 일본륙군장교들에게 조선의병을 지방소요의 주범으로 취급하되 무자비하게 진압하라고 명령하였다.그에 따라 일제는 수많은 의병들을 학살하였다.
한편 일제는 1909년 7월 《한국사법 및 감옥사무위탁에 관한 각서》를 조작하여 반일독립운동자들을 무리로 체포, 투옥하고 학살하였다.
《복리증진》이라는 구실밑에 1906년 6월 《광물채굴법》을 조작한 일제는 우리 나라에서 금, 은, 동, 석탄 등 지하자원을 대대적으로 략탈하여갔으며 1908년 11월에는 《한일어업협정》을 조작하고 수산자원을 마구 긁어갔다.같은 해 12월 일제는 악명높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조작하고 우리 나라의 토지를 마구 강탈하였으며 1909년 10월에는 《한국은행》 등을 조작하여 우리 나라의 금융분야를 완전히 틀어쥐고 민족자본의 발전을 악랄하게 가로막았다.또한 1906년 8월 《보통학교령》을 발포하고 식민지노예교육을 강요하였다.1908년에는 《사립학교령》을 공포하고 애국적이며 반일적인 사립학교들을 강제적으로 페쇄하였다.뿐만아니라 이 시기 일제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도 수많이 파괴, 략탈하였다.
1910년에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조작하고 야만적인 식민지파쑈통치를 더욱 악랄하게 실시하였다.
력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처럼 다른 나라 인민들에 대한 학살과 략탈을 감행하다 못해 성과 이름을 빼앗고 녀성들을 침략군의 성노예로 끌어다 민족의 혈통까지 끊어버리려고 책동한 잔인무도한 무리들을 알지 못한다.
날강도 일제야말로 40여년간에 걸치는 식민지강점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갖은 민족적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백년숙적이다.
그런데 과거범죄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어떠한가.천인공노할 죄악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도리여 식민지력사를 미화하고 재침의 칼을 갈면서 미제의 대조선침략책동에 편승하여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해보려고 미쳐날뛰고있다.
일본과는 끝까지 결산하고 피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야 한다는것이 우리 인민의 확고부동한 의지이다.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통치력사에 대하여 한시도 잊지 않고있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속에서는 과거죄악을 전면부정, 외곡하며 그 청산을 한사코 회피하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세차게 타오르고있다.
오늘 일본반동들이 제아무리 과거죄행을 미화분식하기 위해 별의별 비렬한짓을 다해도 력사는 속일수 없으며 오그랑수를 쓰면 쓸수록 일본의 도덕적저렬성과 비렬성, 파렴치성은 더욱더 낱낱이 드러나게 될것이다.

일본연구소 연구원 라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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